조선 말기인 1890년(고종 27) 7월 28일 미국 장로교의 의료선교사로 한국에 와서 활동하다 전염성 이질로 사망한 존 W.헤론(John W Heron)의 매장지를 구하면서 조성되었다. 당시 서울의 외국인들은 한강변에 가까운 양화진을 외국인의 공동묘지로 불하해 줄 것을 정부에 요청하였고, 우여곡절 끝에 허락을 받았다. 이후 이곳은 한국을 사랑하고 이 땅에 묻히기를 원한 외국인 선교사들과 그 가족의 안식처가 되었다. 한말과 일제강점기 및 6·25전쟁을 거치는 동안에 이 묘지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초기에 황폐하였던 묘지는 주한외국인들의 모금운동으로 새롭게 가꾸어졌지만, 일제가 한국을 강점하면서 외면당하였으며, 6 ·25전쟁 때에는 이 부근이 격전지로 변하는 바람에 묘지석에는 총탄 자국이 남아 있고, 일부 글자는 판독이 불가능할 정도가 되었다.
명칭도 양화진외인묘지, 경성구미인묘지로 불리다가 1986년 10월 서울외국인묘지공원으로 변경되었고, 2006년 5월 지금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1985년 6월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가 묘지 소유권자로 등기되어 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교회가 관리하고 있다. 한국 개신교의 생생한 역사의 현장으로서 한국선교기념관이 설립된 곳이기도 하다.
면적 1만 3224㎡의 합정 143번지 일대로 미국인을 비롯 13개국의 외국인 480여명의 유해가 안장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에는 연세대학을 세운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 부부와 그의 아들 호러스 호턴 언더우드(Horace Horton Underwood)) 부부, 배재학당을 세운 헨리 거하드 아펜젤러(Henry Gerhard Appenzeller)와 그의 딸로 이화여전 초대교장을 지낸 앨리스 아펜젤러(Alice R. Appenzeller), 이화학당을 설립한 메리 스크랜턴(Mary F . Scranton), 제중원과 기독교서회를 세운 존 W.헤론(John W Heron), 평양 선교의 개척자 윌리엄 홀(William Hall)과 그의 부인으로 한국 최초의 맹인학교와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를 세운 로제타 홀(Rosetta S. Hall), 숭실대학 설립자 윌리엄 M. 베어드(William M. Baird), 한말에 양기탁과 함께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영국 언론인 어니스트 베델(Ernest Bethell), 한국의 독립을 위하여 외교활동을 펼친 호머 헐버트(Homer Hulbert) 등의 묘가 있다. 1992년에는 윌리엄 홀(William Hall)의 아들이자 한국에 결핵요양원을 처음 세운 셔우드 홀(Sherwood Hall)이 안장되었다.
양화진은 서울특별시 마포구 합정동 지역의 한강 북안에 있었던 나루터이다, 양화도(楊花渡)라고도 하였는데, 조선 시대 삼진(三鎭)의 하나였던 양화진(楊花鎭)이 위치하였던 곳이기도 하다.서울에서 양천(陽川)을 지나 강화로 가는 조선 시대 주요 간선 도로상에 위치하였던 교통의 요지였으며, 삼남 지방에서 한강을 통하여 운송되어 오는 곡식을 저장하던 오강 중의 하나로 농산물의 재분배 기능을 담당하던 중요 지역이었다.
또한, 서울의 천연 방어선을 이루는 한강의 중요 지역으로, 진대를 마련하고 진장(鎭將)을 두어 수비하게 하여 군사상 중요 기능을 담당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도승(渡丞)이 배치되었으나 뒤에는 별장(別將)으로 바뀌었으며, 호조의 점검청(點檢廳)이 있었다. 나루터의 관할은 어영청에서 하였으며, 양화진에 속한 선박은 모두 10척이었다.이 지역은 한강 가운데에서 경치가 아름답고 정자가 많기로 이름났던 지역이었으며, 한말 역사의 변천과 함께 많은 흔적을 남겼던 곳 중의 하나였다. 즉, 야소교도(耶蘇敎徒)가 박해를 당한 곳으로 지금도 순교자 묘지가 남아 있고, 개화의 선각자였던 김옥균(金玉均)이 처형된 곳이기도 하다.
조선 시대에는 한성부 관할 하에 있었으나, 일제 강점기에는 경기도 고양군 연희면에 속하였으며, 서울에 편입되면서 서대문구에 속하였다. 1944년서대문구에서 분할하여 마포구가 신설될 때 마포구에 속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과거 교통·경제·군사상 중요한 기능을 차지하였던 양화진 지역은 현재 양화대교가 가설되고 강변도로와 지하철 2호선이 설치되어 있어 여전히 교통상 중요 지역의 하나이다. 특히, 김포공항·강화·인천 등지와 연결되는 도로상에 있어 과거와는 다른 형태이나 교통 요지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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