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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율법 학자 가말리엘

천국정원사 2013. 1. 24. 15:51

 

Gamaliel of Jabneh라고도

AD 1세기말 또는 2세기초 야브네에 있던 당시 유대인 최고 입법기구 산헤드린의 나시(의장).

로마가 외부로부터 억압을 가해오고 피비린내나는 내분시기에 유대교 율법과 제의를 통일했다.

AD 70 로마인들이 예루살렘을 포위공격하자, 많은 유대인들이 성서에 나오는 고대 도시 야브네로 피신했다.

가말리엘은 요하난 자카이의 뒤를 이어, 예루살렘 산헤드린의 권위를 물려받은

유대교파의 지도자가 되어, 예루살렘 성전과 산헤드린을 빼앗기고

정치적 자치권을 상실함으로써 몹시 약해졌던 유대인의 신앙을 강화시켰다.

 

가말리엘은 좀더 유연한 힐렐의 유대교 율법 해석에 권위를 부여함으로써

힐렐파와 샴마이파로 갈라져 있던 유대인의 정신적 지도자들 사이의 분열을 수습했으며

특히 희생제의가 금지된 가장 중요해진 기도 의식의 규칙을 정하는 작업에 전념했다.

 

18(나중에는 19) 축복기도로 구성된 아미다(amida) 최종적으로 개정하여

의무적으로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루 3 암송하도록 했다. 그는 자기의 권위를 내세워

유대력을 통일시키고, 이에 따라 축제일을 고정시킴으로써 모든 유대인을 더욱 굳게 결합시켰다.

 

로마는 그를 원로(백성의 지도자) 인정했고, 그의 개혁 때문에 원로로서 세력과 명성이 더욱 높아졌다.

가말리엘은 의장 재임중에 반대자들에게 자주 독재를 휘둘렀는데

자신의 처남을 파문시킨 일도 있었다.

가혹한 처리방식 때문에 한때 파면되었으나, 그뒤 다시 권좌에 복귀했다.

죽은 그의 시신은 검소한 아마포에 싸여 매장되었다.

이것은 많은 유대인 가족들을 빈곤에 시달리게 값비싼 장례에 반대하는

그의 희망에 따른 것이었다.

 

출처: 백과사전 

 

출처 : 안개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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